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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소현왕후 영릉(英陵), 경기도 여주에서 만나다 본문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서, 우리나라 최고의 지도자를 선정할 때, 그 누구의 이견 없이 일치하는 한분이 있다면, 세종대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대왕이라고 부르는 왕이 우리나라에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말고는 언듯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요. 세종대왕은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32년간 재위하면서, 해시계, 혼천의, 측우기와 같은 과학 기구는 물론, 4군6진 개척의 북벌은 물론, 대마도 정벌의 남벌까지 모든분야에서 업적을 남긴거은 물론이고, 지구 역사상 유래가 없는 훈민정음이라는 문자를 창제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해외의 연예인 중에서 업적을 남긴 인물을 외계인에 비교하는 하는데, 세종대왕이야 말로 외계인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렇게 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대단한 분, 우리의 지갑속에 만원(10,000원)속에서 항상 웃고 계신 세종대왕이 영면하신 그곳, 경기도 여주의 세종대왕과 소현왕후가 모셔진 영릉(英陵)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 참고로, 경기도 여주에는 영릉이 2곳이 있는데요. 세종대왕이 모셔진 영릉(英陵)과 효종대왕이 계신 영릉(寧陵)이 있습니다. 또 두 영릉은 산책로를 통해서 연결이 되어 있고(약 1.2km) 한쪽에서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면, 다른쪽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다시, 세종대왕이 계신 영릉으로 돌아와서, 세종대왕 영릉의 입구쪽으로 방문을 하면, 세종대왕 박물관이 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면, 긴 산책로가 나오고, 산책로 중간에 세종대왕 동상과 각종 조선시대 과학기기들의 모형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형들이 20여가지가 있어서 한참을 보고나면, 예전에 사용하던 재실과 새로만들어진 재실을 지나서 비로소 홍살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살문을 만나기 전에, 먼저 입구에 있는 해설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릉(세종과 소현왕후)
Yeongneung Royal Tomb (Tomb of King Sejong and Queen Soheon)
영릉은 조선4대왕 세종(1937~1450, 재위1418~1450)과 소현왕후 심씨(1395~1446)의 능이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종 18년(1418)에 왕위에 올랐다.
32년간 재위하면서 훈민정음(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창제, 해시계, 혼천의, 측우기 등의 과학 기구 발명, 집현전 설치, 아악정비, 4군6진 개척, 대마도 정발, 활자 제조 및 농업 장려 등 정치, 경제, 문화, 과학, 군사 분야 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소현왕후는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공비가 되었는데, 세종14년(1432)에 공비라는 호칭은 왕비로 고쳐졌다. 8남2녀를 낳은 후, 세종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 능은 조선 최초의 합장릉으로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혼유석은 2개를 배치 하였다.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을 알리는 문으로, 왕릉, 사찰, 향교, 사원 등 유적앞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홍살문 아래로 나 있는 돌길은 향로와 어로로, 왼쪽의 높은 길은 향과 축문이 지나가는 길이고, 오른쪽의 늦은 길은 임금이 걸어가는 길 입니다. 길을 따라 주욱 가게 되면, 멀리보이는 정자각을 만게 됩니다.
정자각의 오른쪽에는 영릉표석을 보호하는 비각이 있으며, 왼쪽으로는 수라간이 있어서, 제향을 준비합니다.
비각의 적혀 있는 비문을 볼 기회가 없을 테니,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영릉 비문 [번역문]
세종 장헌 영문예무인서영효대왕은 홍무 30년(정축년, 1397) 4월10일에 탄생하여, 영락 16년(무술년, 1418)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경태 원년(경오년, 1450) 2월17일에 승하하여(같은 해) 6월 광주 헌릉 서쪽언덕에 장사지냈다. 성화 5년(기축년, 469) 3월6일에 여주 서북성산 자좌(북)언덕으로 이장하였다. 재위는 32년, 나이는 54세이다. 명나라에서 장헌의 시호를 내렸다.
왕비 선인제성 소현왕후 심씨는 홍무28년(을해년, 1395) 9월에 탄생하여, 영락 16년(무술년, 1418)에 경빈에 책봉되었고 얼마 있다가 공비로 진봉(호칭을 높여줌) 되었다. 선덕 7년(임자년, 1432)에 왕비로 호칭을 고쳐서 봉해졌고, 정릉 11년(병인년, 1446) 3월24일에 승하하였다. (같은 해) 7월 헌릉 서쪽언덕에 장사지냈다가, 기축년(1469) 3월6일에 대왕릉과 같은 언덕에 이장하였다. 나이는 52세이다.
승정 기원 후 118년(을축년, 1745)에 세우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물인 세종대왕님을 직접 만나뵙고, 사진으로 담아 갑니다.
세종대왕 영릉은 경기도 여주에 수도권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가까이 있습니다. 시간 되시면 한번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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