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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의 흔적 : 38휴게소와 삼팔커피 38 coffee 본문

맛집을 찾아서

38선의 흔적 : 38휴게소와 삼팔커피 38 coffee

STIMA 2018. 10.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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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북화해분위기가 과연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중요한건 우리가 전쟁의 위험없이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이겠죠. 그렇다고 남북관계 때문에 일부러 찾아간건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만들어지고 나서, 강원도로 가는길이 매우 가까워 졌습니다. 그로 인해서, 기존 국도에서 휴게소를 하거나 식당을 하던곳이 매우 힘들다는 하더군요. 그래서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일부러 국도를 이용해 보았습니다. 정말 국도 주변에 문닫은 휴게소며, 식당이 너무 많이 보이더군요. 고속도로가 수도권과 강원도를 가깝게 만들어진 것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인것 처럼 보이더군요. 38휴게소는 문은 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방문자들로 붐비는 느낌은 확실히 아니었습니다.





속초에서 인제방향으로 와서 44번 국도를 따라서 가다보면, 38휴게소라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 합니다. 38다리도 보이구요. 이곳이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남과복의 경계선 이었다는 거죠.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러한 표식들이 그런 사실들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38휴게소에는 LPG충전소, 편의점, 식당, 커피숍이 있습니다. 이곳이 빙어낚시로 유명한 곳인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의 물개가 낚시하는 조형물이 보입니다.





충전소 다음으로 보이는 것이 38선 비석과 38커피가 함께 보입니다. 화장실 간판도 보이시죠?





이곳 비석에는 38선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38선


1945년8월 미,소 양국이 북위38도선을 경계로 일본 점령지의 전후 처리를 위해 설정한 임시 군사 분계선으로 하나였던 한반도의 허리를 관통하여 모든 도로와 철로를 단절시키며 하나의 독립국가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심화되고 적대감이 고조된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이 선이 무너지나, 1953년 휴전협정으로 휴전선이 성립될때까지의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경계선이 되었다.





편의점도 보이구요, 왼쪽으로 더 가면, 식당도 있습니다. 왼쪽의 하얀색건물도 있는데, 내부에 시설이 없는 상태 입니다.





38커피숍으로 들어와 보았습니다.




이런 느낌 입니다. 꽤 넓은편 입니다.





로스터 기계도 2대나 있습니다. 직접 로스팅 까지 하는 것 같죠?





정원처럼 밖으로 나가 앉아서 커피를 즐길수 있습니다.





하지만, 커피가 아닌, 치즈케익과 초코 아이스크림, 초코빵(?)을 먹습니다. 달달한게 땡기는 시간이었거든요.





이곳 38휴게소에서 우측을 보면, 아래사진의 끝에 보이는 다리가 38대교 입니다. 사실 저다리를 건너갔다가 오고 싶었으나 그냥 지나쳐 왔죠.





왼쪽으로는 소양호가 넓게 보입니다. 사진으로 보니, 여느 강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 집니다만, 직접 보면, 그 넓이가 어마어마 하게 넓게 느껴 집니다.




이렇게 38선 위에서 왜 우리가 이렇게 분할 되었는지 궁금해져서 찾아 보았습니다.

미국 육군부 작전국의 초안

1945년 7월에 미국 육군부(현재의 미국 국방부) 작전국(OPD)에서 처음으로 연합국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할 계획안을 마련했다. 이 안은 미국이 경기도 · 강원도(함경남도 원산, 안변 포함) · 충청북도 · 경상남북도를, 소련이 함경남북도(원산·안변 제외)를, 영국이 평안남북도와 황해도를, 중화민국이 충청남도와 전라남북도를 점령하는 계획이었다.


미국 합동전쟁계획위원회의 초안

1945년 8월 미국 합동참모본부 내 합동전쟁계획위원회(JWPC)는 '일본 주요 열도와 한국에 대한 연합국 관리 및 점령군 계획(JWPC385/1)'에서 일본 열도와 한반도에 대한 4국 분할점령 계획을 작성했다.[1] 미국, 소련, 영국, 중화민국 4개국은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킨 후 서울, 청진, 원산, 평양, 군산, 제주 등 주요 전략지점에 연합군을 주둔시키고, 이후 한국이 독립할 때까지 한반도를 분할관리한다는 계획을 입안했다. 하지만 9월 22일 작성된 수정안 'JWPC385/5'에서는 38도선 분할이 확실시되어 영국과 중화민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소련 양국의 분할점령안으로 바뀌었다.[2] 'JWPC385/1'은 현실적으로 군사적 점령이 불가능하다는 미국 군부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다.


3부 조정위원회의 최종안

삼팔선을 확정한 것은 미국 국무부, 육군부, 해군부 기관원의 협의체인 3부 조정위원회(SWNCC)였다. 소련군이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개시한 후, 3부 조정위원회 위원장인 국무차관보 제임스 던(J. Dunn)은 1945년 8월 11일에 육군부 작전국에 소련군의 남진에 대응하여 미국이 서울과 인천을 점령하도록 하는 군사분계선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미국 육군부 작전국의 본스틸(Charles H. Bonesteel, 이후 주한미군사령관 역임) 대령과 미 육군장관 보좌관이었던 딘 러스크(Dean Rusk, 이후 케네디와 존슨 정부에서 국무장관 역임) 중령은 작전국에 걸려 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벽걸이 지도에 38선을 그어본 후 38선 분할 점령안을 미국 합참과 3부 조정위원회에 보고했고, 이 안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어 '일반 명령 제1호'로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달되었다. 38선 분할 점령안을 미국이 제안하자 소련은 별 이의 없이 이를 받아들였고, 1945년 8월 23일 개성시까지 내려갔던 소련군은 9월 초에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은 일본이 저질렀는데, 분단은 왜 대한민국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독일의 경우 다시는 전쟁을 하지 못하게 하기위해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는데 말이죠. 위 내용을 보면, 애초에 일본의 분할점령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던서 같습니다. 미군이 실질적으로 일본을 점령하에 있었으며, 러시아가 계속남하를 하고 있으니, 같은 승전국 이지만, 러시아가 더 남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미국쪽에서 선을 그어 나누어 통치를 하려 했던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나마 영국과 대만은 입맛만 다시다가 물러갔구요. 결국 승전국이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힘의 논리를 앞세워 나뉘어 졌던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땅에 이런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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